그래피티 작가 레오다브

22년 차 그래피티 작가 레오다브에게 그래피티는 세상에 남기는 그의 목소리다. ‘사람들이 저마다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LOVE CAMO LIFE’ 시리즈를 만들고, 작가로서 아빠로서 부끄럽지 않은 기록을 남기고 싶어 ‘독립운동가’ 시리즈를 그리고 있다.

당신의 색을 표현하세요

‘레오다브’가 무슨 뜻인가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줄여서 만든 ‘태그네임’이에요. 태그네임은 그래피티 분야에서 쓰는 말로 작가의 이름을 뜻해요. 군대에 있을 때 지은 이름인데요. 제가 좋아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름을 응용해서 의미 있는 이름을 짓고 싶었어요. 그 당시에 그래피티가 잘 알려졌지 않어서 ‘한국의 그래피티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 보자’는 포부도 담았죠.

2013년부터 ‘LOVE CAMO LIFE’ 시리즈를 이어오고 계시는데, 이 시리즈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대학교에서 힙합 댄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처음 그래피티를 접했어요. 엄청난 끼와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죠. 그런데 그런 친구들이 졸업하고 먹고살기 위해서 전공이나 좋아하는 것과는 상관없는 분야의 일반적인 직장에 취업했어요. 생계가 달린 문제니까 이해가 되면서도 안타까웠어요. 우리 사회가 누구 하나 튀지 않고 살아가려는 회색빛 얼룩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작품의 주제가 됐죠.

그가 좋아하는 ‘오드리헵번’ 러브 카모 라이프 작품

그래서 회색과 대비되는 선명한 색채로 표현하신 건가요?
‘자신의 취향을 좀 더 드러내면서 살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저마다의 색이 있잖아요. 지금 우리 사회에는 좀 더 다양한 색이 필요해요. 그걸 ‘카뮤플라쥬’ 컨셉으로 풀어낸 거예요. 카뮤플라쥬는 ‘숨다, 위장하다, 환경에 적응한다’는 의미가 있는데요. 우리들 각자가 품고 있는 색을 마음껏 발산해도 카뮤플라쥬같은 하나의 온전한 패턴을 이루는 데 아무 문제가 없어요. 오히려 다양한 색이 모여서 더 멋진 세상을 만들 수 있어요. 그런 의미를 담아서 ‘LOVE CAMO LIFE’라는 이름을 붙였고요.

부끄럽지 않은 기록을 남기고 싶다

레오다브 작가님 하면 ‘독립운동가’ 시리즈를 빼놓을 수 없어요. 이 역시 2013년부터 시리즈를 지속하고 계시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으세요?
장준하 선생님께서 “못난 조상이 되지 말자.”고 말씀하신 것이 제 뇌리에 박혔어요. 어찌 보면 그 말이 제 삶의 이정표가 된 것 같아요.
사람은 살아가면서 기록을 남겨요. 제가 그래피티 작가로서 만드는 작품들이 모두 저의 기록이죠. 나중에 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내 아이들이 ‘레오다브’라는 작가의 발자취를 어떻게 볼까, 나는 그래피티 작가로서 어떤 기록을 남기게 될까……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잘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죠. 부끄러운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아요.

삼청동 정독도서관 외벽에 그린 ‘독립운동가’ 시리즈 앞에서

그래서 독립운동가를 그리게 되신 건가요? 작가로서, 아빠로서 부끄럽지 않은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요.
분명 나중에 누군가가 그래피티 문화에 대해 기록을 할 거예요. ‘레오다브’가 상업적인 활동만 했던 작가로 기억되는 게 싫었어요. 좀 더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죠.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나서 역사에 더 관심을 두게 됐는데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세상이 한창 ‘국정 교과서’ 문제로 시끄러웠어요. 아빠인 내가 역사를 모르면 아이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없겠더라고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봤는데, 그게 독립운동가분들을 그림으로 그리는 일이었어요. 거리로 나가자, 나가서 그림을 그리자, 그걸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해 보자,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오랫동안 독립운동가 시리즈를 그렸는데, 작가님의 삶에 영향을 끼친 점이 있을 것 같아요.
독립운동가분들의 삶의 궤적을 조사하면서 이 세상에 어떤 기록을 남기는가에 대해,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게 가장 크죠. 역사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된 것도 변화라고 할 수 있고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가 매우 많은 거 아세요? 이 시리즈를 계속해서 그분들을 최대한 많이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감사하게도 독립운동가 시리즈를 지속하다 보니까, 독립운동가의 후손분들이 감사와 응원 메시지를 많이 주세요. 보람이 커요. ‘독립운동’이란 공통 관심사로 인해 만나게 된 사람들도 많아요. SNS에서 ‘#독립운동’이라는 해시태그로 다른 작가들과 연결돼서 함께 작품 활동을 하기도 해요.

지금은 우리나라 그래피티 분야를 이끄는 작가가 되셨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에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아요.
결혼도 하고 아이가 둘이니 돈을 벌어야 하는데, 어려울 때가 많았어요. 그만둬야 하나 고민할 때마다, 신기하게 ‘독립운동가분들을 그려줘서 고맙다, 작품을 잘 보고 있다’는 응원을 들었어요. 돈을 버는 작업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작업이니까 응원의 말을 정말 많이 해 주시는 기쁨이 있죠.
힘들수록 더 여러 장르의 작품을 하려고 애썼어요. 하나의 스타일에 얽매이기도 싫었고요. 인테리어, 행사, 뮤직비디오, 콜라보레이션 상품 제작 등 여러 가지를 다 했어요. 제 재능을 투입해서 상업 분야에서 돈을 벌고, 그 돈을 독립운동가 시리즈에 썼죠.

2019년 광화문 열린마당에 전시한 독립운동가 시리즈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한다

지난한 시간을 어떻게 버티셨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 보겠다는 마음 하나에 매달렸죠. 내가 한 달에 얼마를 벌든,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강했어요. 저한테는 그게 제일 중요했어요.
감사하게도 연애 시절의 아내, 부모님께서 반대하지 않고 지지해 주셨어요. 저는 확고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힘든 시간도 잘 견뎌서 지금의 제가 됐지만, 앞으로 제 후배들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그래피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에 그래피티 작가가 많나요?
예전에 비하면 정말 많이 줄었어요. 1998년~2000년대 초반까지 힙합이 한창 유행할 때는 그래피티 인구가 많았고, 커뮤니티도 활성화되어 있었고요.
지금은 전문 그래피티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이 전국에 40명 정도밖에 안 될 거예요. 거의 다 제 또래, 40대예요. 30대가 너무 없고, 20대는 더 없어요. 이 나이대의 작가들이 있어야 앞으로 이끌어 나갈 텐데, 걱정이죠.

사십 명 남짓이라니, 너무 외롭지 않으세요?
그래서 그래피티 교육 사업, 강연 활동도 열심히 하려고 해요. 우리나라에 그래피티 문화가 이어지고 발전하려면 나중에 끌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너무 열악하죠.
저변을 확대하려면 그래피티를 직접 접해본 사람이 많아야 해요. 평생 큰 벽에 직접 그래피티를 그려보는 체험을 하는 게 쉽지 않은데, 문화재단 프로그램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그래피티를 접할 기회를 주고 있어요. 꼭 전문 작가가 되지 않아도, 자기 분야에서 그래피티 요소를 자연스럽게 끄집어내서 쓸 수 있게 하고 싶어요.

내년 5월까지 전시하는 서울교육박물관 ‘위인덕분에’ 전시장에서

더 나은 삶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으면 안 된다! 저도 정독도서관 담벼락에 처음 독립운동가를 그릴 때 고민을 무척 많이 했어요. 할까 말까, 한다면 언제 할까, 허락을 받아야 하나, 곧 아빠가 될 건데 혹시 잡혀가면 어쩌지? 등등. 상념이 끝도 없었어요. 그래도 행동에 옮겼죠. 그때 첫발을 내디뎠기 때문에 지금 여기 올 수 있었던 거예요. 지금 고민하는 게 있다면 일단 해 보세요.

행동으로 잘 옮기지 못하는 건 리스크를 감수하기 싫어서일 수도 있어요.
잘못될 것을 먼저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행동해서 얻는 게 더 크고 많아요. 살아보니 불법이거나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게 아니면 일단 해 보는 게 맞아요. 그래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어요. 좋다, 나쁘다 피드백을 받고 방향성을 잡을 수 있죠. 때론 운 좋게 기회가 닿아서 더 잘될 수도 있고요. 생각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않은 아이디어요? 시간이 좀 지나고 보면, 꼭 누군가 들고나와요. 그때 가서 ‘어 내가 하려던 건데’라고 후회하면 늦죠.

앞으로 이루고 싶은 바람이 있다면?
멀리는 두 가지 목표가 있어요. 올해가 광복절 75주년인데요. 100주년이 되는 해에 그동안 그린 독립운동가 시리즈를 광화문에 전시하고 싶어요. 작년에 광화문에 전시했던 것처럼요. 25년 후면 60대가 되는데, 그때까지 진짜 열심히 해야죠. 저 혼자가 아니라 지금 성장하고 있는 다른 작가들, 그 작가들의 아이들, 혹은 제 아이가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된다면 같이 하고 싶어요.
그리고 통일이 된다면 평양에 제일 먼저 가서 그림을 남기고 싶어요. 그래피티 분야는 어느 지역에 누가 먼저 그렸나, 남들이 올라가지 못한 큰 벽이나 높은 곳에 먼저 남기는 게 일종의 ‘스웨그’예요. (웃음)

그럼 가까운 목표는요?
독립운동을 주제로 하는 작가들이 모인 플랫폼 ‘위인유니온’을 만들고 있어요. 그동안 역사를 주제로 하는 플랫폼은 없었는데, 대한민국의 멋을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아티스트들을 모아서 행사도 하고 전시회, 상품도 만들 거예요. 이런 걸음들이 모두 모여서 그래피티 작가이자 아빠, ‘레오다브’의 기록이 완성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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