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 「녹기 전에」 대표

같은 일을 계속하다 보면 일종의 ‘루틴’이 생긴다. 박정수 대표에겐 그것이 삶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요소였다. 자동차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미련 없이 그만두고 1인 창업의 길로 뛰어든 것도 그 때문이다. 한 자리에 고여있는 것이 못 견디게 싫고, 관심 가는 일을 파고들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행복한 자신의 ‘성향’ 하나만 보고 선택한 길이었다.
독학으로 제조법을 연구해 만든 200여 종류의 아이스크림은 염리동을 찾는 트렌디한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고 4년째 순항 중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지만, 그 또한 그에게는 매일 새로운 ‘자신’을 맘껏 표출할 수 있어서 더없이 만족스런 삶의 방식이란다. “아이스크림처럼 인생도 녹기 전에 맛보고 즐겨야 한다”는 ‘녹기 전에’ 박정수 대표가 사는 방법을 들어보자.

한화손해보험 ‘INSTORIES’ 독자들에게 자신을 한마디로 소개한다면?
안녕하세요. 짧은 인생 속에서 사색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 박정수입니다. 그리고 ‘녹기 전에’는 그런 저의 관점이 물씬 스며들어있는 공감각적 ‘작품’이랍니다.
 
작품이라는 말에서 자부심이 느껴지는데, 어떤 공간으로 만들고 싶으셨나요?
처음 기획할 때부터 ‘진지함과 유머 감각이 공존하는 느낌’을 지향했어요. ‘더 나은 아이스크림 생활을 추구하자’는 제 나름의 신조도 있고요. 제게 ‘녹기 전에’는 단순히 아이스크림 매장이 아니라, 하나의 브랜드예요. 아이스크림 메뉴 종류가 많은 편이에요. 지금까지 개발한 것만 200여 가지 됩니다. 판매하는 아이스크림은 모두 제가 매일 직접 신선한 재료로 만드는데요.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재료가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시도해 봤더니 메뉴가 이렇게 늘어났네요.

진지함과 유머 감각을 추구하신다는 게 독특한 메뉴들에서 느껴졌어요.
고객분들이 굉장히 좋아해 주세요. (웃음) 막걸리, 깻잎, 검은깨, 소금우유, 훈제베이컨, 참치, 피나콜라다, 흑맥주 등 재료에 한계를 두지 않는 편이에요. 덕분에 단골도 많이 생겼죠.

막걸리, 깻잎, 검은깨, 소금우유, 훈제베이컨, 참치, 피나콜라다, 흑맥주 등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재료에 한계를 두지 않는 편이에요.

‘녹기 전에’를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예전에 직업을 5년에 한 번씩 바꾸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어요. 그 후 선택한 첫 번째 일이 바로 지금 하는 ‘녹기 전에’ 운영입니다. 어릴 때부터 워낙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제게 아이스크림은 ‘시간도 이처럼 녹으니 인생을 소중히 여겨라’라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알려주는 상징물이었어요. 또 아이스크림은 여러 가지 식자재와 잘 어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어요. 제조법 자체가 식품 공학적인 측면도 있고요. 카이스트 공대 출신인 제 역량을 발휘하기에도 적합한 디저트 플랫폼이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늘 같은 일만 하는 게 고통”이라고 하셨어요. 혹시 그게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1인 기업으로 경로를 바꾼 이유일까요?
연관성은 있지만, 뭔가 엄청나게 거대한 일이나 커리어를 의미하는 건 아니고요. 고등학교를 2년을 채워서 조기 졸업한 후, 카이스트 4년을 다니려니 너무 지루했어요. 몇 번씩이나 휴학과 복학을 반복해서 겨우 졸업했죠. 회사는 총 두 군데 다녔는데, 재직 기간이 각각 6개월, 7개월 남짓밖에 안 돼요. 취미 생활도 한 가지를 오래 지속하기 힘들었고요.
그렇게 보니 제가 2년 이상 지속하고 있는 생활 패턴이 거의 없더라고요. 즉, 저는 일상에 ‘루틴’이 생기면 소위 말하는 ‘현타’가 바로 오는 유형의 사람인 거예요. 내가 지금 이걸 왜 계속하고 있지? 하고요. 그런데 ‘녹기 전에’는 제법 오래 하고 있네요. (웃음)

루틴을 거부한다는 게 정체되는 걸 경계하는 성향이란 뜻도 되겠죠. 도전에 대한 갈망이 있으면서도 주저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대표님의 조언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돌이켜 보면 사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지금 이 일을 시작하긴 했어요. (웃음) 하지만 ‘현재의 불행을 밑천 삼아 미래의 행복을 담보할 수는 없다’는 생각만은 확고했어요. 불행을 적금하면 그 결과는 더 거대한 불행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해요. 저는 일 자체에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면 돈을 많이 벌어도, 취미를 즐겨도, 다른 그 무엇으로도 그 구멍이 채워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확실한 자기 판단이 있었어요. 어떤 일에 관심이 있다면, 자신이 그 일을 하는 것 자체에서 순수한 기쁨을 느낄 수 있는지 정말 세밀하게 상상해 보세요. 굉장히 중요해요.

창업 이전과 이후에 삶, 무엇이 가장 달라졌나요?
앞선 질문의 답변에 이어서 답해야 할 것 같은데요. ‘녹기 전에’를 운영하면서 루틴이 생기면 곧 밀려오던 인생에 대한 회의감, 무기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생활 패턴이 그렇게 만들어줬어요.
이 매장의 브랜드 이미지는 온전히 제가 구축한 세계관이에요. 이 안에서는 제가 노력해서 이것저것을 바꾸고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어요. 루틴이 존재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개발한 200가지의 메뉴, 매일 바뀌는 메뉴 방식, 아이스크림을 표현하는 다양한 사진 촬영 등을 통해 저 자신을 매일 새롭게 표출할 수 있죠.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아이스크림이 마치 악기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데요. 한 악기로 다양한 장르를 연주할 수 있듯 다양한 식자재로 다양한 맛, 시각적 표현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게 잘 맞고 지속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잘 살아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가장 주요했던 비결은 ‘성향’인 것 같아요.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품고 있는 성향 자체를 이기지는 못하는 것 같거든요. 저는 조금이라도 정체되면 몸에 가시가 돋는 성격이라서, 자연스럽게 늘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이에요. 관심이 가는 것은 뭐든 그 마음이 ‘녹기 전에’ 해봐야 하죠. 물론 때로는 그런 성향이 넘쳐서 강한 스트레스로 돌아오기도 하죠. 그런데 그런 저의 성향이 우리나라 시장에는 잘 맞는 것 같아요. 국내 소비자들은 새로운 것을 찾는 경향이 특히 강한데, 그에 잘 부합된 것 같습니다.

어떤 일에 관심이 있다면, 자신이 그 일을 하는 것 자체에서 순수한 기쁨을 느낄 수 있는지 정말 세밀하게 상상해 보세요.

요즘 자주 떠올리는 고민거리는?
‘업’의 외연을 넓혀가는 것이 고민이에요. 한 가게가 4-5년 차쯤 되면 이 형태를 영원히 유지하기에는 물리적, 체력적으로 어려움이 많이 따른다는 걸 깨닫게 돼요. 자연히 일의 시스템을 만들고 외연을 넓혀야 한다는, 진화적 고민을 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요즘에는 현재 매장의 운영 시스템을 만드는 것, 아이스크림을 좀 더 트렌디하게 생활문화 전반에 어우러지게 만들 여러 가지 작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한 말씀해 주신다면?
큰 틀에서 보면 더 나은 삶이란 결국 행복한 삶과 유사하겠죠? 제가 생각하는 행복의 공식은 ‘내가 보고 알고 좋아하는 것’ 분의 ‘그중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입니다. 불행은 내가 좋다고 ‘아는 것(직업, 재화, 외모, 능력 등)’은 무궁무진하게 많은데, ‘가진 것’은 적을 때 느껴요. 더 나은 삶은 이 중에서 분모의 크기를 줄이거나 분자의 크기를 늘릴 때 가능해지겠죠. 지금같이 너무 많은 정보가 넘쳐 나는 시대에는 더 주의해야 하는데요. 정보의 홍수 속에 침잠해 분모를 키우기만 하지 말고, 자신을 잘 정의해서 ‘분수’에 맞는, 분수가 ‘1’로 향하는 삶을 추구해 보세요. 더 나은 삶, 개인의 행복은 늘 나의 깜냥을 벗어나서는 성립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대표님의 다음 스텝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최근에 콘텐츠 기획과 마케팅에 관심이 생겼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감탄을 잘하는데요, 그 대상이 참 다양해요. 어떤 사물, 현상 등 무척 많죠. 이걸 공유하고 싶어요. 콘텐츠 기획이나 마케팅이라는 도구를 잘 활용하면 저의 그 ‘감탄’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공감대를 형성해서 실제 구매로 이어지게 만드는 일이 너무 흥미롭더라고요. 아마도 다음에 만나면 제가 그 일에 푹 빠져있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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